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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파이어 공부하자

기원전 금속화폐의 발전과 인플레이션 이야기

by 준파이어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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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화폐 사용의 시작

 

기원전 4000년 초 시기의 고대 국가들 에서는 기존의 곡식을 통한 물물교환 (곡식의 화폐사용) 에서 벗어나서 가죽 구슬, 의류, 심지어 노예 등의 다양한 교환물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좀더 효과적인 화폐를 원하게 되면서 부피가 작고 견고한 금속으로 이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국가들에서는 구리로 만들 물건이나, 철고리, 도끼 같은 여러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화폐의 기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1300년경 크레타에서 화폐발전의 새로운 도약이 이뤄집니다. 가온데에 구멍이 뚫린 동전 모양의 금속원반을 화폐로서 유통했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대 중국에서도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원반형의 물체가 교환수단으로 사용됩니다. 기원전 700년 즈음에는 드디어 개인이 아니라 정부에서 주조한 최초의 화폐 (최초의 공식 화폐)가 리디아 지방에서 만들어 집니다. 

 

  경제학사가들은 기원전 4000년 초에 시작된 곡물화폐에서의 금속화폐 형태로의 변환이 당시의 지도자 (아마도 왕)들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 합니다만,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는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그 때도 인플레이션은 있었다

   이 시기부터 이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었다는 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통치자들은 더 많은 권력과 땅을 원했기에 전쟁을 위해서 화폐를 발행하여 군비로 충당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화폐의 양은 점점 늘어났고, 통화의 팽창은 인플레이션을 야기 했습니다.  이 시대의 인플레이션의 정도를 알려주는 문서가 있으니 바로  " 용병 이쉬바 에라의 문서" 입니다. 이는 기원전 2022년 수메르 통치자에게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쉬바 에라는 이 편지에서,  전에는 1만톤(단위는 당시의 단위로 쓰여있습니다만 현대의 기준으로 말씀드립니다)의 곡물을 사는데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갑자기 2배가 폭등했다고 왕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기록은 없으나 기원전 3000년대의 통치자들은 통화팽창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가져온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물가상승에 대해서 기록한 당시의 자료들이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물가관리에 대해서 당시 통치자들이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기원전 1792년에 집권한 함무라비 왕(바빌론의 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오랜 전쟁으로 인해서 군사비 지출로 국가재정이 피폐해졌고 인플레이션이 크게 발생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법전에서는 이전에 사용되던 은을 도시 지역에서만 화폐로 사용하도록 규제하고 농촌지역에서는 곡물로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농토를 담보로 한 대부를 보리로 상환하게 했고 이러한 대부의 이자 또한 곡물로 지급하게 하고 연 최대 이자율을 33%로 제한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서 화폐량 (은)을 줄여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함무라비가 화폐의 기능에 대해서 아주 높은 수준의 이해를 하고 있었고 화폐량 증가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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